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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여행록에 나타난 ‘경계 공간’에 대한 인식 연구- 대판성과 요동 지역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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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9-1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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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엄은 이전의 사행록과는 달리 객관적인 기준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사실과 내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자세히 그려내고 있따 다음의 예문은 대판에 도착하는 순간의 기록이다. 1. 서론

2. 바다를 건너 도착한 새로운 뭍 - 일본의 경계 공간 체험
(1) 화려한 문물에 대한 감각적 경도
(2) 자기우월감의 확인과 모멸의 시선
(3) 인식의 전환 - 실질적 정보에 대한 관심 확대

3. 강을 건너 도착한 광활한 들판 - 청나라의 경계 공간 체험
(1) 광대한 규모에 대한 압도
(2) 이용후생에 대한 겸허한 학습과 수용
(3) 인식의 전환 - 자아와 세계 인식의 지평 확대

4. 結論

(3) 인식의 전환 - 실질적 정보에 대한 관심 확대

앞에서 살펴본 조선 사신들의 일본에 대한 이중적 인식은 요약하자면 ‘감탄과 모멸의 이중적 시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辰初已近百里 河海相接之處 波勢駛急 而水淺沙壅 難於行船. 故彼人於其稍深處 立標木於左右 以形門柱 間間揷竹 以指前路 而僅容一船 不可雙行. 由此而進船 撑篙而量水. 到十餘里始抵河口 回望三騎船 貼於沙泥 移時拔出 巳時量六船齊泊一處 …(省略)
18세기 여행록에 나타난 ‘경계 공간’에 대한 인식 연구- 대판성과 요동 지역을 중심으로
18세기 전후반의 연행록과 사행록들의 경계공간에 대한 기록을 통해 이 시기의 조선의 대외 인식을 구체적으로 점검해보고, 이 기록들에서 드러나고 있는 이 시기의 청과 日本 의 객관적 상황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고찰한 리포트입니다. 또한 일본의 文化(culture) 를 거칠고 조잡한 文化(culture) 로 바라보고 싶어하는 모멸적인 시선과 자기우월감의 태도 역시 일본의 발전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없게 하는 방해 요소였던 것이다.18세기여행록에나타난 , 18세기 여행록에 나타난 ‘경계 공간’에 대한 인식 연구- 대판성과 요동 지역을 중심으로법학행정레포트 , 18세기 여행록에 나타난 ‘경계 공간’에 대한 인식 연구- 대판성과 요동 지역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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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 태도는 모두 당시의 일본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에 대한 태도 역시 18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조엄의 사행록에서 조금씩 alteration(변화) 의 징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여 리를 가자 처음으로 하구에 도착했는데 삼기선을 돌아보니 저 진흙 속에 붙어있더니, 얼마 후에 빠져나와 사시 경에는 6척의 배가 모두 한 곳에 나란히 정박했는데 바다로 온 것이 3천리였다. 눈에 보이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문물에 대한 감각적인 경탄은 다만 그 순간의 감탄에 그칠 뿐이었고, 그러한 문물을 만들어낸 일본의 文化(culture) 적 수준과 역량을 인정하는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설명






18세기여행록에나타난


18세기 전후반의 연행록과 사행록들의 경계공간에 대한 기록을 통해 이 시기의 조선의 대외 인식을 구체적으로 점검해보고, 이 기록들에서 드러나고 있는 이 시기의 청과 일본의 객관적 상황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고찰한 리포트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조금 깊은 곳에 표목을 좌우에 세웠는데 그 모습이 문설주 같았고, 사이사이 대나무를 꽂아 앞길을 표시했는데 겨우 한 척의 배만 들어가고 쌍으로 갈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배가 나아가는데 상앗대를 버티며 물의 깊이를 헤아리며 갔다.

진시 초에 이미 근 백 리를 갔는데 강과 바다가 서로 접하는 곳에서 파도의 기세가 몹시 급했으며, 물은 얕고 모래가 막혀 배가 가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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