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년, 치욕적인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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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1-19 07:28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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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선에 대하여 왕자 대신 및 척화 주장자들을 잡아 보내지 않으면 다시 조선을 치겠다고 위협하였다. 이…(To be continued )
2. 병자호란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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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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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 치욕적인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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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자호란의 Cause
정묘호란이 끝난 후 후금은 승전국으로서 무리한 요구를 하기 처음 하였다. 이는 조선을 `아우의 나라`에서 `신하의 나라`로 만드려는 굴욕적인 요구였다. `신은 이 세상에 태어난 후로 오직 대명천자(大明天子)가 있다는 말만 들었습니다.인조 14년(1636년), 홍타이지는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었다. 당시 척화파의 강경론을 대표하는 홍익한은 이렇게 상소하였다. 식량을 내어 줄 것을 요구하는가 하면 명을 정벌할 병선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에 대하여 `형제지맹`을 `군신지의(君臣之義:신하의 나라)`로 바꿀 것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이제 오랑캐를 섬긴다는 말은 어찌된 일입니까?` 이렇듯 후금의 무리한 군신관계 요구로 척화론(斥和論:강화를 배척, 즉 싸우자는 주장)이 대두하고 조선과 후금과의 관계는 악화되어갔다.
순서
병자년, 치욕적인 패배에 대한 자료입니다. 그러나 이미 척화론이 대세를 이룬 조선 政府는 이를 묵살하였다. 홍타이지는 내몽고를 정벌하는 한편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 부근을 공격하면서 기세를 떨쳤다.